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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범 김구선생 암살자 안두희 그를 응징한 박기서 그리고 안세희
    labinews 2020. 10. 23. 17:49

    [백범 김구선생을 살해한 안두희][사진:위키백과]

     

    백범 김구선생을 암살한 안두희      1917년 3월 24일 ~ 1996년 10월 23일 

     

    평안북도 용천군에서 태어난 그는 1934년 고등학교 졸업 후 일본으로 유학, 1939년 메이지 대학교 법학과를 중퇴한 후 중국 등에서 상업을 하였는데 그 당시 중국에서 강두희라는 가명을 사용하였다. 그 뒤 귀국하였으나 1947년 북한에서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월남하였다. 월남 청년 출신인 그는 한국 전쟁에 참전하였으며 독립운동가였던 김구의 암살범으로 알려져 있다. 아명(兒名)은 안덕희(安德熙)이며 한때 안영준(安英俊)이라는 가명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육군 소령으로 예편한 뒤 군납기업 신의기업사 사장을 지낸 바 있다. 사촌 동생은 연세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안세희이다.

     

    [백범 김구선생을 살해한 안두희]



    안두희는 1996년 10월 23일 오전 11시 30분경 인천 중구 신흥동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경기도 부천 소신여객 소속 버스 운전 기사였던 당시 49세의 박기서(朴琦緖)의 몽둥이에 맞아 80살의 나이에 피살됐다. 평소에 백범 김구를 매우 존경하던 박기서는 "김구를 살해한 안두희를 응징할 기회를 노리다가 살해에 이르렀다"고 밝혔는데 1997년 이러한 범행 동기가 정상 참작되어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에 1998년 3·1절 특별사면이 있은 직후인 1998년 3월 13일 석방되었다.

     

    안두희를 응징한 박기서       1948년 12월 9일  ~  현재

    [백범 김구선생을 암살한 안두희를 살해한 버스기사 박기서][사진:연합뉴스]

    1996년 10월 23일 경기도 부천에서 소신여객 시내버스 기사로 일하던 박기서는 소신여객에서 얻은 휴가 기간 중 백범 김구 암살범인 안두희를 처단하기로 결심한 후 부천시장의 그릇가게에서 홍두깨 비슷한 40cm 크기의 몽둥이를 4천원 주고 사서 오전 11시 30분 인천광역시 중구 신흥동에 있는 안두희가 사는 아파트에 들어간다. ‘정의봉(正義棒)’이라고 쓴 홍두깨와 장난감 권총을 지니고 안두희의 부인을 묶은 뒤 옆방에 있던 안두희에게 장난감 권총을 겨누며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권총이 불을 뿜는다" 고 고함을 쳤다. 이어 준비해간 나일론 끈으로 안두희의 두손을 묶고 '정의봉으로 사정없이 구타했다. 숨이 차면 냉장고에서 찬 물을 꺼내마셔가며 계속 몽둥이로 두들겨 패서 결국 몽둥이로 때려 죽였다. 당시 중풍에 걸려있던 안두희는 무언가를 얘기하려는 듯 입을 움직였다고 한다. 박기서는 안두희가 숨진것을 확인하고 곧바로 신곡본동 성당에 가서 고해성사를 한뒤 경찰에 자수했다. 고해성사를 받은 이준희 신부는 이렇게 회고했다. "박기서 씨는 역사적으로, 김구 선생을 죽인 안두희는 당연히 처벌받아야 하는데 아직도 역사가 그 일을 하지 않으니 자신이 사명감을 갖고 죽였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면서 안두희의 장례와 그의 영혼에 대해 걱정하면서 성당에서 안두희의 장례를 치르는데 차라리 도움을 줄 수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마친 후 인천중부경찰서로 연행되어 긴급 구속되었다. 그는 범행동기에 대해 자신은 학창시절부터 김구를 존경해 왔고 1995년 초 백범일지를 읽은 뒤 백범의 유지를 이어야겠다고 결심했으며, 권중희가 쓴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 책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또한 '의로운 일을 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라는 진술도 하였다. 박기서는 범행 직전 권중희에게 전화를 걸어 안두희를 죽이겠다고 했으나, 권중희는 그를 살려 두어 김구의 살해동기와 배후세력을 알아내야 한다면서 범행을 말렸다고 한다.

     

    [안두희를 살해할때 사용한 정의봉은 현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전시}


    범행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후, 사회 각계 인사들이 '백범 김구 암살범 안두희 처단 박기서 의사 석방 대책위원회' 를 조직하여 9,200명이 서명한 탄원서를 인천지방법원에 제출하는 등 구명 운동을 펼쳤다. 시민들은 그의 자택에 격려금과 위로 편지들을 보내기도 했다.

     

     

     

     

    백범 김구선생을 암살한 안두희 사촌동생 안세희    1928년 4월 22일 ~ 현재 

    [안두희 사촌동생  안세희]{사진:연대홈페이지}

    1928년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출생했다. 연희대학교 물리학과에 들어와 졸업했다. 1951년 대한민국 공군에 입대하여 1955년까지 공군사관학교 교수로 근무했다. 그후 연대로 돌아와 전임강사로 시작해 부교수, 정교수를 거쳐 이학부장, 기획실장, 대학원장, 교학부총장을 거쳐 연세대 총장에 올랐다. 전후에 학부를 나온 뒤에 연세대에서 교수로 커리어를 쌓아 올라간 첫 총장이다.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연세대학교 9대 10대 총장을 역임했다.

     

     

     

    [안세희의 딸과 사위 안우경. 천명우 예일대 교수부부와 힐러리 클린턴]{사진:안우경교수페이스북]

     

    [예일대학장 천명우(마빈 천)교수와 나경원][사진:스트레이트]

     

    마빈 천(천명우) 교수는 나경원 아들 의혹을 눈감아준 의혹이 있는 예일대 학장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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